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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교사·보험영업왕 출신의 매출 수십억원대 CEO |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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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셀러 육성 교육으로 대박

    체육교사·보험영업왕 출신

    중기 해외 활로 찾아주는 것이 꿈

  • 중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천부적인 영업력으로 입사 첫해부터 억대 연봉을 거머쥔 그는 3년 만에 다시 창업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뒀다.
    남다른 경력의 주인공은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이하 연구소) 안영신(38) 대표.

    ‘글로벌 셀링’(Global Selling)은 해외 온라인 제품을 국내 시장에, 국내 온라인 제품을 해외 시장에 되파는 사업이다. 예를 들어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 올라온 해외 상품을 캡처해 11번가, G마켓 등의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 올린다. 아마존 가격보다는 비싸게, 국내 인터넷 최저가보다는 싸게 올려서 차익을 남길 수 있다. 해외직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겨냥한 사업 모델인 셈이다. 유통업계는 연간 국내 해외직구 거래(약 2조원)의 30~40%가량이 글로벌셀러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셀링은 ‘해외→한국’ 모델뿐 아니라 ‘한국→해외’, ‘해외→해외’도 가능하다. 연구소는 글로벌셀링 교육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그밖에 글로벌셀러의 사업 편의를 돕는 온라인 서비스 제공, 자체 글로벌셀링 사이트도 운영한다. 자체 사이트의 거래 매출을 포함한 연구소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70억원. 회사 직원 수는 20명이다. 안 대표를 만나 인생 역정과 성공 비결을 들었다.



  • ◇ 불우했던 어린 시절

    외동아들인 그는 초등학교 6학년때 부모를 여의었다. 전북 진안에서 크게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결핵에 걸렸던 어머니마저 3개월 만에 아버지를 따라갔다.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아버지가 남겨둔 빚이 3500만원이었다. 할머니가 함바집(건설현장 식당)에서 일하며 빚을 갚고, 손주를 키웠다.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이었죠. 고생하시는 할머니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시골 학교였지만 반에서 줄곧 1등을 했다.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바로 취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설득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생활보호 대상자였다. 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공부했다. 1998년 전북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새벽과 저녁에 수영 강사로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교사에서 보험회사 영업맨으로 졸업 후 잠시 전북의 한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이어 학사 장교로 입대해 2005년 전역과 함께 전북의 한 중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했다. 기간제 교사였다. 군 생활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군에 있을 때 결혼해서 가장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시험 준비를 하며 급한 대로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했다. 대학 때처럼 새벽과 저녁에는 수영강사로 일했다.

    “오전 6~8시 수영을 가르치고 학교로 출근했어요. 오후 6시 퇴근하면 다시 수영장으로 갔어요. 밤 10시까지 또 수영을 가르쳤어요. 일 안 할 때는 임용고시 준비를 했고요. 교사·수영강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하루 5시간 이상 잔 날이 거의 없어요.” 기간제 교사 월급 200만원, 수영강사 월급 100만원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돈 벌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가장으로서 마음이 불편했다.




  • 군에 있을 때 중대장이 학교에 있는 그를 찾아왔다. “보험 영업을 해보지 않겠냐"라는 제안을 했다. 중대장도 제대 후 보험 영업 일을 하고 있었다. 안 대표의 성실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 영업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안 대표는 중대장의 제안을 몇 차례 고사했다. 임용고시 합격이라는 목표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듭된 설득에 한 보험회사의 영업사원 설명회에 참석하게 됐다. “열심히만 하면 억대 연봉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특전사 출신 잘 나가는 보험 설계사의 실제 월급 통장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는데 연수입이 2억5000만원이었어요. 교사가 돈을 보고 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하루 4~5시간씩 자면서 밤낮으로 일해도 월 300만원을 겨우 버는 제가 조금 비참해 보이더라고요.”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결사반대하는 아내를 겨우 진정시키고, 무작정 상경했다.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목표로 세운 것은 ‘가장 일찍 출근, 가장 늦게 퇴근’이었습니다.” 처음 1년간 새벽 5시30분 출근해 밤 11시 퇴근했다. 보험 상품을 공부하고, 억대 연봉을 받는 선배들에게 영업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첫 월급은 1500만원. 그 다음 달에는 1200만원을 벌었다. 월급이 1000만원 밑으로 내려간 적이 거의 없었다. 보험 영업에 뛰어들자마자 억대 연봉자가 됐다. “저도 제가 영업에 적성이 그렇게 잘 맞을 줄 몰랐어요. 성실함 하나를 무기로 회사 선배들에게 전수받은 노하우를 요령 피우지 않고 실천했고, 성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우수 영업사원에도 여러 번 선정됐다.



  • ◇ 또 다른 도전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시련이 왔다. 사정이 어려운데 보험을 들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해약이 속출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모은 돈으로 사업을 하려고 알아보던 차에 글로벌셀러라는 직업을 알았다. 관련 교육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초반에는 고전했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국내 안경테를 일본 온라인 시장에 재판매하면서 첫 성공을 거뒀다. 이후 노하우가 생기면서 월 500만~600만원을 꾸준히 벌었다.

    2010년부터 글로벌셀링 강의를 시작했다. 강사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2012년부터는 글로벌셀링 전문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5년간 안 대표가 운영하는 연구소를 거쳐간 수강생이 3000명을 넘는다. 부업으로 글로벌셀링을 시작한 직장인이 가장 많았다. 처음에는 강의만 했다. 이후에는 수강생들의 애로사항을 적극 반영해 글로벌셀링 사업의 편의성을 크게 높여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글로벌셀러들이 크게 늘면서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들이 1인당 제품 업로드에 제한을 두자, 업로드 제한이 없는 글로벌셀러 전용 온라인 쇼핑몰도 따로 만들었다. 이 쇼핑몰의 거래 매출(50억원)을 포함한 올해 회사 총매출은 약 70억원이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5년 만에 직원 수 20명의 회사로 키웠습니다. 지금까지 확보한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해외 온라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잡스엔